`강구연월'(편안 강, 네거리 구, 연기 연, 달 월)이란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인다.
이 말은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동요 `강구요'(康衢謠)에서 유래한다.
격양가(擊壤歌)
성왕(聖王) 요(堯)가 전 중국 땅을 다스린지 이미 50년이 지났다. 그는 자기 스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백성들이 자기의 통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느 날 요는 백성들의 옷으로 변복하고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미행을 나갔다. 그의 발검음이 강구(사방으로 뚫린 큰 대로)에 이르렀을 때 마침 한 노인이 밥을 배불리 먹고 난 후 기분이 좋아서, 한손으로는 잔뜩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한가로이 땅을 두르려 박자를 맞추며 모래를 부르고 있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고
우물을 파서 물마시고, 밭 갈아서 먹으니
제왕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이 노래는 요의 덕치로 천하가 태평성세를 누리나, 제왕의 다스림이 강제가 아닌 만물의 순리에 따름으로써 백성들은 그 다스림을 깨닫지 못하고 제왕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있느냐며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노인의 노래를 들은 요 임금은 정치가 뜻대로 잘 되어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고 있음을 알고 흐뭇해져서 궁으로 돌아갔다.
노인이 부른 노래는 ‘격양가’ 또는 ‘강구요’라로 하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로 [사기]의 {제왕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이 노래는 흔히 태평성대를 비유하여 사용되며, 또한 이고시를 ‘고복격양’ ‘함포고복’ 혹은 ‘강구가무’라고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중니'편에 보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된 요 임금이 민심을 살펴보려고 미복 차림으로 번화한 거리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해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卷第4 仲尼篇 20031013
공자가 한가하게 지내고 자공이 들어가서 모실 때 근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자공이 감히 물어 보지 못하고 나와서 안회에게 알렸다. 안회가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하였다. 공자가 이를 듣고 안회를 불러들여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홀로 즐거우냐?" 안회가 말하길 "선생님은 어찌 홀로 근심하십니까?" 공자가 말하길 "먼저 너의 생각을 말해 보아라." 안회가 말하길 "저는 예전에 선생님께서 '하늘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알므로 근심스럽지 않다'고 하신 것을 들었으므로 즐거워합니다." 공자가 안색이 바뀌고 잠시 후 말하였다. "그런 말을 했었더냐? 너는 잘못이해했느니라. 이는 내가 이전에 너에게 말한 것인데 지금의 말로써 바로잡도록 하겠다. 너는 단지 "하늘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알므로 근심스럽지 않다"를 알뿐 "하늘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알므로 근심이 더욱 크다"는 것은 모르는구나. 이제 너에게 그 진실을 말하면, 한 몸을 닦음에 잘되든 못되든 인생의 변천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 마음에 혼란과 변화가 없게 된다. 이것이 너의 이른바 "하늘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알므로 근심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시경과 서경을 편찬하고 예악을 바로잡아 이로써 천하를 다스리려고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다. 이는 단지 한 몸을 닦고 노나라를 다스리려 한 것만이 아니다. 그러나 노나라의 군신들은 나날이 그 질서를 잃어가고 인의가 더욱 약해지고 성정이 더욱 얇아졌다. 이 도가 한 나라와 내가 살고 있던 그 해에도 실행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천하와 후세에 있어서랴? 나는 일찍이 시경, 서경, 예악이 혼란을 다스리는데 소용이 없음을 알았지만 이 세상을 구제할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것이 하늘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아는자의 근심하는 바이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즐거워하고 안다는 것은 옛사람이 말한 즐거움과 앎이 아니다. 무악무지가 진악진지다. 그러므로 무소불락, 무소부지, 무소불우, 무소불위하느니라. 그러므로 시경, 서경, 예악을 버릴 필요가 있겠느냐? 어찌 세상을 바꾸겠느냐? 안회가 북쪽을 보고 절하여 말하길,"저도 알겠습니다." 나가서 자공에게 고하였다. 자공이 망연자실하여 집에 돌아가 7일간 깊이 생각하여 자지도 먹지도 않아서 뼈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가 되었다. 안회가 다시 돌아와 그것을 설명해 주어, 자공이 곧 공자의 문하로 되돌아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시경, 서경을 암송하길 평생 그치지 않았다.
진나라의 대부가 노나라를 방문하여 노나라의 숙손씨를 만났다. 숙손씨가 말하길 "우리나라에는 성인이 있습니다." 진나라 대부가 말하길 "공자가 아닙니까?" 숙손씨가 대답하길,"그렇습니다." 진나라 대부가 말하길, "그가 성인인지 어찌 아십니까?" 숙손씨가 말하길, "나는 늘 안회가 '공자는 마음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몸의 형체만을 사용할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듣습니다." 진나라 대부가 말하길, "우리나라에도 성인이 있습니다. 당신은 모르십니까?"숙손씨가 묻길,"당신나라의 성인은 누구인가요?" 진 대부가 말하길 "노담의 제자로서 이름이 항창자인데, 노담의 도를 전수받아, 귀를 사용하여 사물을 볼 수 있고, 눈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노나라 왕이 이 일을 듣고, 매우 놀라, 국무총리를 융슝한 예를 갖춰 보내어 항창자를 초청하였다. 항창자가 초청을 받아들여 노 왕에게 왔다. 노나라 왕이 겸손한 말로 가르침을 청했다. 항창자가 말하길, "말을 전한 사람이 잘못 말했습니다. 저는 귀와 눈을 사용하지 않고, 보고 들을 수 있을 뿐, 눈과 귀의 기능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노나라 왕이 말하길, "이는 더 기이하구나. 이러한 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듣고 싶소이다." 항창자가 말하길," 나의 형체는 심지와 결합하고, 심지는 또한 원기와 결합하고, 원기는 도한 정신과 결합하고, 정신은 또한 허무와 결합합니다. 만약 지극히 미세한 형체, 지극히 미약한 소리가 있다면 먼 곳에 있든 가까운 곳에 있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반드시 알 수 있습니다. 나도 나의 일곱 개의 구멍과 사지가 이를 지각하는지, 뱃 속의 오장육부가 지각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알수 있을 뿐입니다." 노나라 왕이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오래지 않아, 노나라 왕은 이 사실을 중니에게 알렸는데, 중니는 웃기만 할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상나라의 태재가 공자를 만나 말하길, "당신은 성인입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성인이라니요, 말도 안됩니다. 나는 단지 학문이 넓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 뿐입니다." 태재가 말하길, "삼왕은 성인입니까?" 공자가 말하길, "삼왕은 지혜롭고 용감한 사람을 잘 이용할 뿐 성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묻길, "오제는 성인입니까?" 공자가 말하길 "오제는 인의도덕을 잘 이용하는 사람일뿐 성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묻길, "삼황은 성인인가요?" 공자가 말하길, "삼황은 시기를 잘 파악하는 사람일뿐 성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상나라의 태재가 매우 기이히 여겨, 말하길,"그렇다면 누가 성인인가요?" 공자가 안색이 조금 바뀌며 잠시 후 말하길, "서방에 성인이 있는데, 국정을 다스리지 않아도, 국정이 자연스럽게 다스려지고, 말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교화하지 않아도, 정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행하는 바가 위대하여 백성들이 어떻게 그를 칭찬할 지 모릅니다. 저는 그가 성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그가 진짜 성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상나라의 태재가 잠자코 깊이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말하길, " 공구가 나를 속였다."
자하가 공자에게 물어 말하길, "안회는 어떤 사람인가요?" 공자가 말하길, "안회의 인덕은 나보다 낫지." 또 묻길,"자공은 어떤 사람인가요?" 공자가 말하길,"그의 입담은 나보다 낫지." 또 묻길, "자로는 어떤 사람인가요? 공자가 말하길,"그의 용감함은 나보다 낫지." 또 묻길,"자장은 어떤 사람인가요?" 공자가 말하길,"그의 점잖음은 나보다 낫지." 자하가 자리를 물러서며 묻길,"그렇다며 그 네 사람은 어찌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습니까?" 공자가 말하길, "앉아라, 내가 말하겠다. 안회는 인애하지만 모질지가 않고, 자공은 웅변에 뛰어나지만, 말이 무겁지 않고, 자로는 용감하지만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자장은 점잖지만 화합할 줄 모르므로 네 사람의 장점을 모두 합쳐서 나와 바꾸자고 해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나를 따르면서도 딴 마음이 없는 이유이다."
열자가 호구자림를 스승으로 삼고, 백혼무인과 교우하면서 성밖 남쪽에 기거하였다. 매일 열자와 왕래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데도 열자는 여전히 그의 정미한 도를 매일 객들과 함께 토론하여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그 소문을 들었다. 열자와 남곽자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20년을 이웃하면서도 왕래가 없었고, 길에서 만나도 마치 상대를 못 본 것처럼 하였다. 문하의 제자들이 모두 열자와 남곽자가 원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초나라에서 온 사람이 열자에게 말하길, "선생님은 남곽자와 무슨 원한이 있습니까?" 열자가 말하길, "남곽자는 용모가 충실하고, 마음이 텅 비어,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보지 않고, 입으로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몸으로 움직이지 않으니 그와 왕래에서 무엇하겠느냐? 의심스러우면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가 보겠다." 열자가 40명의 제자를 데리고 남곽자에게 갔다. 남곽자는 과연 흙인형처럼 보여 그와 교제할 수 없었다. 그는 뒤돌아열자를 보았는데, 정신이 이미 형체와 떨어져 다른 사람은 그와 함께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남곽자가 열자의 제자중 서열이 아래인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는데, 힘있고, 거침없는 모양이었다. 열자의 제자들이 매우 놀랐다. 되돌아와서는 모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열자가 말하길,"사물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고, 모든 것을 알게 되어도 말할 필요가 없다. 무언으로 말 하는 것도 말하는 것이고, 무지로 아는 것도 아는 것이다. 말이 없는 것도 말하지 않는 것, 앎이 없는 것과 모르는 것, 역시 말이고 앎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없고, 알수 없는 것이 없으면 말하는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게 된다. 이와 같을 뿐이니 너희들이 놀랄 필요가 있느냐?"
열자가 학문을 하는데 3년 후에는 마음 속에 옳고 그름을 감히 생각하지 못했고, 입으로 이익과 해로움을 감히 말하지 못하여, 스승인 老商子가 비스듬히 쳐다볼 뿐이었다. 5년 후에는 마음 속에 옳음과 그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입으로 이익과 해로움을 말하게 되어, 노상자가 비로소 약간 웃음을 보였다. 7년 후 마음이 생각한 바를 따르니 옳고 그름이 없어지고, 입이 말하는 바를 따르니 이익과 해로움이 없게 되었다. 스승은 이제 비로소 나를 같은 자리에 앉게 하였다. 9년 후 마음이 생각한 바와 입이 말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행하니, 나의 시비이해를 알지 못하고, 너의 시비이해를 알지 못하니, 안과 밖에 서로 완전히 통하였다. 이후 눈은 귀와 같고, 귀는 코와 같고, 코는 귀와 같으니, 모두 같지 않음이 없었다. 마음이 모이고, 형체가 흩어져, 골육이 모두 융화되었고, 형체가 의지하는 것과, 발이 밟는 것, 마음이 생각하는 것, 말이 의미하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으니 모든 이치가 그에게 가려진 것이 없었다.
예전에 열자가 여행을 좋아하였다. 호구자가 말하길, "네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은 어떤 점에서 좋으냐?" 열자가 말하길, "여행의 즐거움은 즐기는 것이 진부하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여행할 때 그 보이는 것을 보지만, 저는 여행할 때 그 변하는 것을 봅니다. 아 여행이여, 사람들은 그 여행의 다름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호구자가 말하길, "네 여행이 다른 사람과 같은데 어찌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말하느냐? 무릇 보는 것은 언제나 그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저 외물의 변화를 즐길줄 알뿐 나 자신도 변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외적인 여행에 충실하면 내적인 관조에 충실할줄 모른다. 외적인 여행은 사물에 갖추어진 것을 구할 뿐이고, 내적인 관조는 자신에게 있어 만족을 취한다. 자신에게 있어 만족을 취하는 것이 여행의 최고경지이고, 사물에 있어 갖추어진 것을 구하는 것은 여행의 최고경지가 아니다." 그 이후 열자는 평생 밖으로 나가지 않고 스스로 여행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호구자가 말하길, "이것이 여행의 최고경지다. 최고경지의 여행은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최고 경지의 감상은 보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모든 만물을 두루 여행하고, 모든 만물을 감상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여행이고, 이것이 내가 말하는 감상이다. 그러므로 여행이 최고경지에 이르렀도다, 여행이 최고경지에 이르렀도다."
용숙이 문지에게 말하길, "당신의 의술은 뛰어납니다. 내가 병이 있는데, 당신이 고칠 수 있겠습니까?" 문지가 말하길,"명을 따르겠사오니, 우선 병의 증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용숙이 말하길, "모든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여도 영광스럽지가 않고, 국가에서 나를 훼방하여도 모욕적으로 여겨지지 않고, 무엇을 얻어도 기쁘지 않고, 무엇을 잃어도 슬프지 않고, 삶을 죽음과 같이 여기고, 부를 가난과 같이 여기고, 사람을 돼지와 같이 여기고, 나를 남과 같이 여깁니다. 내 집에 거하면서도 여관에 있는 것처럼 여기고, 내 나라에 있으면서도 오랑캐 나라에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이러한 모든 질병으로인해 작록과 상이 나를 격려하지 못하고, 형벌이 나를 위협하지 못하며, 성쇄, 이해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슬픔과 즐거움이 나를 동요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임금을 섬길 수 없고, 친구를 사귈 수 없고, 처자를 다스릴 수 없고, 종들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는 어떤 질병입니까? 어떻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문지는 이에 용숙이 빛을 등지고 서게 하고, 자신은 그 뒤에서 빛을 항하여 이를 관찰하였다. 잠시 후 말하길, "아, 나는 당신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비어있습니다. 거의 성인에 가깝군요. 당신의 마음의 여섯구멍이 소통하고 있고, 구멍 하나가 막혀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성스럽고 지혜로운 것을 질병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 구멍하나가 막힌 것에서 연유한 듯합니다. 저의 얕은 의술로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미암는 바가 없으면서도 영원히 사는 것이 도이다. 생존의 법칙에 근거하여 생존하므로 생명이 비록 마치더라도 생명의 도가 다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항상된 이치이다. 생존의 법칙에 말미암으면서도 죽으면 불행한 일이다. 말미암는 바가 있으면서도 언제나 죽는 것, 이 역시 도이다. 죽음의 법칙에 근거하여 죽으므로 비록 생명이 다하지 않더라도 생명의 이치는 이미 다했으니, 이 역시 항상된 이치이다. 죽음의 법칙에 말미암으면서도 사는 것은 요행이다. 그러므로 말미암는 바가 없으면서도 사는 것을 道라 하고, 도로 말미암아 죽는 것을 常이라 한다. 말미암는 바가 있으면서도 죽는 것 역시 道이며, 도로 말미암아 죽는 것 역시 常이다. 季梁이 죽었을 때 양주는 그 문을 바라보며 노래하였다. 隨梧가 죽었을 때 양주는 그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곡을 하였다. 보통사람들이 살고, 죽으면, 그들은 노래하거나 곡을 한다.
눈이 어두워지려는 자는 우선 극히 미세한 사물이 보인다. 귀가 먹으려는 사람은 우선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린다. 입이 맛을 잃으려는 자는 우선 미세한 맛의 차이를 구별한다. 코가 후각을 상실하려는 자는 우선 미세한 냄새를 구분한다. 몸이 약해지려는 자는 우선 가볍게 뛰게 된다. 마음이 혼미해지려는 자는 우선 시비를 구분한다. 그러므로 사물은 지극한 지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되돌아오지 않는다.
정나라의 포택에는 현자가 많이 나왔고, 동리에는 재능있는 자가 많았다. 포택에 백풍자라 불리는 열자의 제자가 있어 동리를 걸어가다 등석을 만났다. 등석은 자기 제자들을 둘러보며 웃으며 말하길, "너희들을 위해 그를 골려줄까 하는데 저기 오는 자가 어떻느냐?" 제자들이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등석은 백풍자에게 말하길, "너는 養養의 도리를 아느냐? 남에게 공양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기를 수 없는 것은 개, 돼지의 부류이다. 남을 기르면서도 그것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면 인간의 노력이다. 너희들 무리를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는 것은 국가집정자들의 공로다. 너희들 노소가 무리지어 모여 가축우리 안과 주방의 칼아래 있는 것 같으니 어찌 개, 돼지의 부류가 아니겠느냐?" 백풍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백풍자의 종자가 앞서 나아가 말하길, "대부는 齊魯에 재주있는 이가 많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나요? 토목일을 잘 하는 사람, 금과 가죽을 잘 다루는 사람, 악기와 노래를 잘 하는 사람, 글씨와 계산을 잘 하는 사람, 군사를 데리고 전쟁을 잘 하는 사람, 제사를 잘 지내는 사람 등 각종 재능있는 사람들이 두루 있습니다. 그러나 상호간에 서열이 없고, 부리는 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위에 군림하는 자는 지식이 없고, 그들을 부리는 자는 능력이 없고, 지식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 의해 부림을 받고 있습니다. 집정자들은 우리로 말미암아 지휘하는 것이니 당신은 어찌 교만할 수 있느냐?" 등석이 대답할 말이 없어, 눈짓으로 제자들로 돌아가게 했다.
공의백이 힘으로 제후들에게 소문이 나서 당혜공이 주선왕에게 이를 말하였다. 왕이 예를 갖춰 그를 초빙하였다. 공의백이 왔는데 모양을 보니 유약한 선비같았다. 선왕이 마음에 의혹이 생겨 의심하며 물었다. "너의 힘은 어떠하냐?" 공의백이 말하길,"신의 힘은 봄날 메뚜기의 다리를 부러뜨릴 정도이고, 가을날 매미의 날개를 받칠 정도입니다. 왕이 정색하며 말하길, "내 힘은 들소의 껍질을 벗기고, 소 아홉 마리를 끌어당길 정도인데 아직도 약한 듯 느끼고 있다. 너는 겨우 메뚜기 다리를 부러뜨리고, 매미 날개를 받칠정도이면서 힘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어찌된 일인가?" 공의백이 길게 탄식하며 예를 갖춰 말하길, " 잘 물으셨습니다! 신이 감히 사실을 말하겠나이다. 신의 스승은 상구자신데, 힘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으셨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몰랐습니다. 그 힘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정성을 다해 그를 모셨습니다. 제게 알려주시길, "사람은 자기가 보지 못한 것을 보려고 하고, 남이 보지 못한 걸 보고자 합니다. 자기가 얻지 못한 걸 얻고자 하고, 남이 하지 못한 걸 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시력을 단련하는 사람은 우선 큰 것부터 보고, 청각을 단련하는 사람은 우선 큰 소리를 듣습니다. 무릇 내적으로 쉬워지면, 바깥으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바깥으로 어려움이 없으면, 이름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게 됩니다. 이제 신의 이름이 제후에게 알려졌으니 이는 신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겨 신의 재주를 드러낸 결과입니다. 그런즉 신의 이름은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 그 힘을 잘 이용한 것이니, 그 힘에 의지한 것보다 더 낫지 않겠습니까?"
中山公子 牟는 魏나라의 현명한 公子이다. 어진 자들과 여행하길 즐겨, 국사엔 걱정하지 않았다. 趙나라 사람 공손룡을 좋아하였다. 樂正子輿의 무리가 이를 비웃었다. 공자모가 말하길, "너는 어찌 내가 공손룡을 좋아하는 걸 비웃느냐?" 자여가 말하길, "공손룡의 인간됨이, 행함에 있어 스승의 법도가 없고, 학문에 있어 동문이 없으며, 교묘한 말은 정도에 부합되지 않아, 학설이 번다할 뿐 일가를 이루지 못하였으니, 괴이한 말을 좋아하여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남의 마음을 미혹케하고, 남의 입을 굴복시켰으니, 韓檀 등과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공자 모가 얼굴색이 변하며 말하길, "어찌 당신은 공손룡의 잘못을 말하는가? 듣고 싶소이다." 자여가 말하길, "저는 공손룡이 공자의 손자 孔穿을 속이는 것을 비웃는데, '활을 잘쏘는 사람은 뒷 화살이 앞 화살을 명중할 수 있다. 연달아 쏘아 화살이 연이어 박히니, 앞 화살이 조준하여 끊임이 없고, 뒷 화살이 앞화살의 뒤를 향해 연이어진 현과 같으니, 하나의 긴 화살처럼 보인다.'고 하니, 공천은 매우 놀라와했습니다. 공손룡이 말하길,"이는 아직 그리 기묘한 것이 아니다. 逢蒙의 제자인 鴻超는 자기 아내를 향해 노를 발하여, 두렵게 했다. 황제의 궁과 衛의 활로써 그녀의 눈동자를 향해 활을 쏘아 그녀의 눈동자에 닿기 전에 눈도 감기 전에 땅으로 떨어졌고 먼지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지혜있는 자의 말이라 할 수 있습니까?" 공자 모가 말하길, "지혜있는 자의 말은 진실로 어리석은 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뒷화살촉이 앞화살뒤를 명중하는 것은 앞화살과 뒷화살의(힘과 방향)이 균일하기 때문이다. 눈동자를 향해 활을 쏘아 눈을 감지도 않게 하는 것은 활의 세력을 다하게 했기 때문이다. 너는 어찌 의심하느냐?" 악정자여가 말하길,"당신은 공손룡과 같은 사람이니 어찌 그의 결점을 벗겨낼 수 있겠는가? 내가 다시 더 심한 것을 말하리다. 공손룡은 위왕을 속여 말하길, '뜻이 있어도 마음이 아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도달할 수 없다. 사물의 나누어짐은 끝이 없다. 그림자는 결코 움직일 수 없다. 머리카락으로 천균의 물건을 들어올릴 수 있다. 백마는 말이 아니다. 어미없는 송아지에게는 어미가 있었던 적이 없다.'이러한 사물의 구별과 상식에 어긋나는 말은 이루 다 셀수 없습니다." 공자모가 말하길,"너는 지극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심한 것이라 여기니, 심한 것은 너에게 있다. 뜻이 없어지면 마음은 모두 같게 된다. 가리키는 바가 없어지면 실질을 알 수 있게 된다. 사물을 아무리 나누어도 언제나 존재하게 된다. 그림자는 움직일 수 없으니 앞의 그림자가 뒷그림자로 바뀐 것을 말한 것이다. 털 하나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림은 세력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형체와 이름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어미없는 송아지는 일찍이 어미가 없는 것이니,(어미가 있었다면) 어미없는 송아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악정자여가 말하길 "당신은 공손룡의 말이 모두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빵귀를 꾸면 당신도 이를 따를 것입니다."공자가 오랫동안 조용히 있다 헤어지며 말하길,"시일을 기다려 다시 토론합시다."
요가 천하를 다스린지 오십년이 지나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였다. 천하 백성들이 자신을 추대하길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알지 못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에게 물어보아도 알지 못하였고, 조정밖의 관원들도 알지 못하였고, 관직없는 평민들도 알지 못하였다. 요는 그래서 평민 복장을 하고 번화한 거리로 나와 아이들의 노래소리를 들었다. "우리 백성들을 다스리시니, 지극한 도리를 얻었도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 요가 기뻐하며 묻길, "누가 너희들에게 이것을 가르쳤느냐?" 아이가 말하길,"우리는 대부에게서 들었습니다.' 대부에게 물으니," 대부왈,"이것은 옛시입니다." 요가 궁으로 돌아와 순을 보고 황제의 직위를 물려주었다. 순은 거절하지 않고, 물려받았다.
관윤희가 말하길, "스스로 집착하지 않으면 사리가 저절로 분명해진다. 그 움직임이 흐르는 물과 같고, 머무름이 거울과 같고, 그 반응하는 것이 메아리와 같다. 그러므로 그 도는 사물에 순응하는 것이다. 사물이 도에 어긋나면 도 역시 사물에 어긋나게 된다. 도를 잘 따르는 자는 또한 귀와 눈과 힘과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도를 따르고자 하면서 시력, 청력, 형체, 마음을 써서 구하고자 하면 올바르지 않다. 도는 앞에 있는 것 같으면서 홀연히 뒤에 있고, 사방에 가득찬 듯 하면서, 비어 있어 작용하지 않으니, 그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마음으로 멀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심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며 본성을 이루는 사람이 도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알고 정욕을 없애면, 능히 할 수 있으면서 억지로 하지 않으니, 이것이 참된 앎이고, 참된 능력이다. 무지를 깨우치면 어찌 정욕을 일삼겠느냐? 할 수 없음을 깨우치면 어찌 억지로 하겠느냐? 쌓인 땅과 모인 먼지와 같은 것은 비록 억지로 함이 없지만 지극한 이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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